
오늘 해야 할 일은 쌓여 있는데 손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던 날, 혹시 있으셨나요? 저는 대학교 막학기 때 그 감각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해야 할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몸도 마음도 딱 거기서 멈춰버리는 그 순간. 그게 무기력이더라고요. 그리고 그게 제 잘못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한참 뒤에야 알았습니다.
성취 기억을 꺼내야 할 이유
"내가 이걸 해낼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지 않으셨나요? 저는 그럴 때마다 습관처럼 못했던 것들을 먼저 떠올렸습니다. 20살 때부터 미뤄오던 운전면허를 25살이 되어서야 겨우 딴 것도, 돌아보면 당시엔 부끄러운 기억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게 생각합니다. 미뤘지만 결국 해냈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니까요.
2024년 한 해 동안 저는 건축기사, 실내건축기사, BIM 코디네이터, 운전면허, 한국사능력검정시험 2급까지 총 5개의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BIM 코디네이터(Building Information Modeling Coordinator)란 건축 설계 단계부터 시공, 유지관리까지 3차원 디지털 모델을 기반으로 프로젝트 정보를 통합·관리하는 전문가를 의미합니다. 당시에는 그냥 '해야 하니까 했다'는 느낌이었는데, 지금 와서 보면 그게 전부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을 쌓는 과정이었던 겁니다. 여기서 자기효능감이란 어떤 과제를 스스로 수행할 수 있다는 믿음과 확신을 뜻하는데,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가 제시한 개념으로, 과거의 성공 경험이 이 감각을 키우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국내 성인의 심리적 소진 관련 연구에 따르면, 번아웃(Burnout) 상태에서 회복하는 데 과거 성공 경험을 상기하는 인지적 재구성(Cognitive Reframing) 전략이 유의미한 효과를 나타냈습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여기서 번아웃이란 지속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감정적·신체적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된 상태를 의미하며, 단순한 피로와는 구분됩니다. 지금 무기력하게 느껴지는 분들이라면 한번 여쭤보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끝까지 해냈던 일, 하나만 떠올릴 수 있으신가요?
완벽주의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때
혹시 '제대로 시작하지 못하면 아예 시작하지 말자'는 생각을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솔직히 이 함정에 꽤 오래 빠져 있었습니다. 글을 쓰고 싶었지만 첫 문장이 마음에 안 들면 아예 덮어버렸고, 부업을 시작해보고 싶었지만 준비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계속 미뤄왔습니다.
며칠 전 SNS에서 우연히 짧은 영상을 봤는데, "행동하고 싶으면 엉망으로 행동하라"는 말이 나오더라고요. 처음엔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생각할수록 맞는 말이었습니다. 완벽주의(Perfectionism)란 심리학적으로 수행 결과에 대해 지나치게 높은 기준을 설정하고,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심한 자기비판을 반복하는 심리적 성향을 뜻합니다. 문제는 이 완벽주의가 오히려 행동 자체를 막는 회피 기제로 작동한다는 점입니다.
무엇이든 빈틈이 있어야 오히려 튼튼해진다는 말을 요즘 자주 떠올립니다. 콘크리트 건물도 팽창과 수축을 견디기 위해 신축줄눈(Expansion Joint)을 의도적으로 설계에 넣습니다. 여기서 신축줄눈이란 온도 변화나 하중에 의해 구조물이 늘어나거나 줄어들 때 균열을 방지하기 위해 일정 간격으로 의도적으로 만들어두는 빈 공간을 의미합니다. 완벽해 보이는 구조물에도 의도된 빈틈이 있는 것처럼, 완벽하지 않아도 시작하는 것 자체가 더 단단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저는 대학교 막학기에 전 과목 A+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제 경험상 그게 가능했던 건 완벽하게 하려고 해서가 아니라, 일단 손을 먼저 댔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완벽한 계획을 세우려다 오히려 시간을 다 써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아마 공감하시는 분들이 꽤 있을 것 같습니다.
마음 방어력을 키우는 구체적인 방법
무기력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찾다 보면, 가장 먼저 나오는 말이 "자신을 사랑하라"는 식의 막연한 조언인 경우가 많지 않으신가요? 저도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걸 어떻게 하라는 건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구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심리적 회복탄력성(Psychological Resilience)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는 역경이나 실패, 스트레스 상황에서 원래 상태로 되돌아오거나 오히려 더 강해지는 심리적 능력을 의미하며,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 현재 심리학계의 주된 견해입니다. 국내 정신건강 연구 자료에 따르면 일상에서 작은 자기 돌봄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 이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라는 결과가 있습니다(출처: 국립정신건강센터).
마음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제가 직접 적용해보고 효과를 느낀 방법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과거 성취 경험을 글로 짧게 적어두고 무기력할 때 꺼내 읽기
- 하루 중 딱 한 가지만 '완벽하지 않아도 되는 일'로 시작해보기
- 자신을 비판하기 전에 친한 친구에게 하듯 말을 바꿔보기
- 지금 이 순간을 잘 보내는 것 자체를 성과로 인식하는 연습 하기
저는 남한테는 한없이 관대하면서 스스로에게는 유독 엄격했던 것 같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꽤 많은 분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패턴이기도 합니다. "나는 왜 이것밖에 못 하지"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던지기 전에, 지금까지 해낸 것들을 먼저 세어보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요?
고등학교 때 전국대회에 나가 동상을 받았던 기억,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을 다녔던 기억. 지금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아도, 그 순간의 저는 정말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무기력이 찾아왔을 때, 그것이 내가 게으른 탓이 아니라 오히려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이 살아있다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그 마음을 다그치기보다 조용히 인정해주는 것부터 시작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그리고 오늘 하루, 엉망이어도 좋으니 딱 한 발만 내디뎌 보셨으면 합니다.
그 한 발이 결국 전부를 바꿔놓는 경우를 저는 제 삶에서 이미 여러 번 목격했습니다.
참고: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42831942&start=pnaver_02